중간계 中間界 

Mid Land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2009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주체할 수 없는 무거움과 무서움을 뿜어내며 내리는 눈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를 빌딩의 숲속에서 길을 잃게 하였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하늘은 더욱 먹먹해 지고 눈발은 몇 발자욱 걸어가는 내내 서럽기라도 한 듯 쏟아져 내렸다.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머릿 속이 차거워지고 가슴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우두처니 도로에서서 우산을 꺼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받쳐들고 한발자욱씩 걸어가기 시작한다. 마치 어딘가로 갈것을 정해 놓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 순간부터 시간보다는 공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뿜어져 내리는 눈줄기의 시간보다는 일순간 적막해진 종로의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그 공간에 푹 빠져들어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잠시만이라도 그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 이어폰을 빼 들었다. 어릴적 집앞의 해운대 바다에서 한없이 추웠던 겨울바다에서 느껴지던 고요함이 어떻게 이곳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 기억의 느낌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은 단편적인 기억들이 레이어처럼 겹쳐 쌓여 올려진 것처럼 이러한 하나의 느낌만으로 많은 기억의 층위를 구성해 내었다.

대학1학년 여름 어느날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던 강원도 오대산의 숲속에서 숨을 들이쉬며 느껴진 숲속의 깊은 내음으로부터 전해지는 평안함과 지금의 고요함은 연결 되어 있는 것 같았으며, 초등학교 5학년때 소풍으로 학교 뒤 백산에 올라 보물찾기 시간에 모두 흩어져 선물이 적힌 쪽지를 찿으러 헤매던 그때 느껴진 적막함들. 그러한 기억들이 겹겹히 쌓여 지금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아련할 뿐이다.

눈은 멈출기세가 아니다. 대낮이지만 어둑해진 하늘로 가계들의 간판에선 벌써 빛을 발하고 있으며 버스를 제외한 차들은 꿈틀 거리며 찾은 속도로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었다. 잠시 사사로운 세상으로 넘나들었던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태평로를 통해 남산으로 가야겠다고 내심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그것이 또 하루를 먹어들이는 나의 중간세계이다.

(2009년 영풍문고 앞에서)

> 이 사진들은 수년간에 걸쳐 여러대의 Point & Shot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들이며 사용하기 어려운 이런 이미지들을 모아 소량출판을 하게 되었다.
TITLE
중간계
中間界
date
2011
gallery
A-BOOKS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