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도시 - 『그 남쪽을 향해 걷다』

한 여름 낮, 대학로 이화 사거리, 정림건축 사옥에는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나는 정림건축의 그림자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리고 한 발짝 내딛어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땀은 비 오듯 하며 뜨거운 햇살에 눈을 치켜 뜨기 어려워 분홍색의 본더치 모자를 살짝 벗었다 눌러쓰고 호흡을 고른다.
‘눈에 띄는 볼거리’와 이른바 ‘이정표’를 지나치며 방향을 잡고 1969년형 롤라이플렉스 이안반사식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타박타박 걸으면서 도시를 훔쳐본다. 이화여대부속병원을 지나 동대문운동장을 향해 걷다 멈추어 서서 파인더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잠시 머뭇거린다. 이건 아니다 싶어 열었던 파인더를 살며시 닫는다.
만화경과 같은 미세한 감정의 파장들이 나의 마음을 뚫고 지나가지만, 막상 셔터를 눌리지는 못한다.

나는 카메라를 든 사냥꾼처럼, 마음속에서는 어서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그것은 가장 부드러운 사냥법이라고, 그래서 현실을 기록하라고 재촉한다. 다시 땀은 비 오듯 하며 건물 사이사이 에어컨의 실외기에서 내뿜는 열기는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은데 신발 속 작은 돌맹이는 언제 들어갔는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를 떠밀어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광희 사거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신호등에 살짝 몸을 의지하고, 몸을 구부려 신발 속 작은 돌맹이를 털어 내다 주위사람들의 반응에 신호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곤 서둘러 신을 고쳐 신고 부지런히 대열 속에 끼어든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장충단 공원을 지나 국립극장을 향해 걸어 올라가다, 장충 리틀 야구장에서 연습중인 학생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겨 철조망 사이로 렌즈를 비집고 집어넣어 보지만 생각같이 되지 않아, 이 참에 야구장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나를 가로막는다. 잠시 망설이다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래 다음에 촬영하면 된다고 나를 위로하지만, 사실 다음은 없다라는 것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국립극장에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돌계단을 올랐지만, 생각 같이 시원하지는 안으며, 오히려 텁텁할 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퍼렇지도 그렇다고 맑지도 않은 그저 그런 하늘이며, 오래되 보이는 커플이 할일 없이 파라솔 밑 그늘에 내려 앉아 서로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지루한 듯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나는 무심히 응시해 본다.

국립극장 옆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보며, 잠깐 남산 정상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아 볼 것을 상상하며 망설이다가, ‘서울이란 도시는 계절과 상관 없는 곳인가보다’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잡는다. SK 주유소를 지나 할리 데이비슨 매장을 지나치며 습관적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육교를 건너 미8군 부대 담 길을 걸으며 신발 안에 돌맹이가 없어져 밎밎하다는 생각과 함께 뒤를 한번 돌아보며 ‘낯설다’라고 느낀다. 이 더위도 무색할 만큼.

단대 앞 버스 정류장에서 이태원으로 올라가볼까 다시 한번 망설여보지만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아, 담배를 하나 빼물 때쯤, 마침 내 앞에선 471버스에 아무 생각 없이 올라탄다. 버스는 휘청거리며 횡한 한남대교를 건넌다. 버스 안의 건조한 에어컨 바람이 젖은 회색 면 티 안으로 파고 들고,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회색 빛 뿌연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접어 가방에 집어 넣는다.

(2006년 여름 – 이재훈)
TITLE
중간도시
『그 남쪽을 향해 걷다』
date
2008. 1. 30 - 2. 19
gallery
Gallery ON

탈인간적 시선에 잡힌 날 것으로서의 풍경

이번 전시에서 이재훈의 작품들은 풍경에서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특이한 방법에서 그 특수성을 발휘한다. 풍경에서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는 까닭은 날 것으로서의 풍경 자체를 낚아채기 위한 것이리라.
‘날 것으로서의 풍경 자체’는 세잔의 작품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표현을 빌면 이제 막 태어나는 풍경이다. 일컫자면 가장 먼저 태어나는 풍경인 셈이다.
풍경에 사람의 흔적들이 뿌려지면 냄새가 다소 더럽지 아니한가. 날 것으로서의 풍경 자체를 잡아채자면 풍경에서 인간을 아예 삭제해버리면 되지 않은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풍경에서 사람을 아예 빼버리면 풍경은 자칫 구경거리 혹은 눈요기가 되고 만다. 아예 사람을 빼고서 풍경을 구경거리 내지는 눈요기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대단한 내공이 필요하다.
관람객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풍경이 관람객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래서 관람객이 오히려 대상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훈의 이번 전시 작품 중 이러한 수준을 상당 정도 달성하고 있는 작품은 서울대공원의 작품 정도로 보인다. 평범한 것 같지만 정확한 명암의 대비를 통해 공간 내의 사물들을 언캐니한 것 즉 분명히 친숙한데 한껏 낯선 것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이재훈의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작품들은 사람들이 조그맣게 들어있는 것들이다. 
풍경에서 사람의 흔적을 지워 날 것으로서의 풍경 자체를 잡아채기 위해 이재훈은 오히려 사람을 풍경으로 만들어 집어넣는 구성 기법을 활용한다.
풍경의 전체 공간 속으로 함입되어버린 인간 혹은 인간들은 스스로를 약화시키면서 풍경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럼으로써 풍경을 그저 눈요기 내지는 구경거리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삽입된 그 인간 혹은 인간들이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푼크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스투디움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주관적인 체험을 하도록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무슨 추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무슨 신기한 사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있는 ‘풍경의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뻔뻔스러움’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데서 성립하지 않는가.

이재훈은 인공물로 가득 찬 풍경을 포착할 때조차 인간을 함께 집어넣어 그 인공물에서 인간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이재훈은 인간을 집어넣음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흔적을 전반적으로 삭제하는 기법을 구사하는 데 경도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 결과 ‘냉담한 사물로서의 풍경’을 보여준다.
인간의 눈을 지닌 우리는 좀처럼 사물을 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사물로서의 풍경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인간의 눈이 아니다. 사진의 미덕은 인간의 눈을 벗어나는 데 있다. 인간의 흔적을 제거할 수 있다는 데서 사진은 그 고유한 매체적 기능을 발휘한다.

‘날 것으로서의 풍경 자체’, ‘풍경의 뻔뻔스러운 모습’, ‘냉담한 사물로서의 풍경’과 같은 어구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재훈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정확하게 사진 작품이다.

조광제(철학, 철학아카데미)
Installa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