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친 카메라 변천사

1989_ASAHI PENTAX

asahi pentax


내가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어릴적 남천동 집의 
안방는 장이 3개가 있었다.내 기억에는 제일 왼쪽에는 아빠장, 중간에는 이불장, 오른쪽에는 엄마장. 
호기심이 가득한 나이인 중학생. 아빠장을 열고 깊숙히 손을 넣었다. 습하고 어두운 그곳에는 묵직한 무엇인가가 손에 잡혔다.
 까만 낡은 가죽 케이스에 쌓여진 카메라를 꺼내고 흥분된 마음으로 케이스를 열었다. 모습을 보인 것은 아사히 펜탁스.
안방에 털썩 주저 앉아 습한 부산의 여름 날씨에 이마에 땀을 훔치며 천천히 셔터를 감았다. ‘찰칵’..
신기하였다. 뭔가 알 수 없는 흥분감을 느꼈다.

이것이 나의 사진의 시작으로서의 카메라 였다. 아빠가 언제 그 카메라를 샀는지.
어디서 샀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 카메라를 들고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필름을 조심스레 넣고,
광안리 바닷가로 나갔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물론 노출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Shutter Speed가 뭔지, 조리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난 그저 셔터를 감고 셔터를 누를 뿐이었다.
동네 현상소로 뛰어가 현상을 맡긴다. 사진의 대부분이 노출이 맞지 않아 나오지 않는다. 우연히 한 두컷정도 바다 사진이 촬영되었다. 
그 한 두컷에 신기해 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몰래 사진을 즐기다가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마침 학교에 사진부 써클이 있다. 
써클 이름은 ‘하야로비’, 학과 같은 새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이 Pentax로 고등학교 3년을 생활했다. 매년 선배들에게 맞아가면서 사진을 배우고 학교 축제에 사진을 걸었다.
마침내 고3이 되고 사진학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1993_NIKON F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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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신구대학 사진과에 진학한다.지지리도 공부안하고 놀던 막내아들이 기특하게 대학이라도 가서 그런지 아들 손을 잡고 부산 남포동을 가잔다.당시 작은 가게였던 ‘일광카메라’에 들어가서 당시 최신형이었던 Nikon F4s와 28mm,50mm렌즈 그리고 Nikon SB-28을세트로 사주신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당시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난 카메라 박스만 처다보며 너무나도 설레여 있었다.집에서 밤새 가지고 놀았다. 설명서도 일어로 되어 있는 것 뿐이었다. 상관치 않았다. AF기능과 AE기능만으로도 너무나 감동이었다.당시 F4s는 세가지 종류가 나왔다. F4, F4s, F4e. 세기종 중에는 F4e가 가장 고가였다. 내 기억에는 배터리가 더 들어가고 연속촬영이 몇장더 가능했다.니콘의 최고의 바디로 인정받는 F3보다 완성도는 더 좋았다. 역시 니콘은 남자의 바디라고 불린만 하다. 완전한 그립감에 매력적인 셔터소리. 20살에 학교 앞에서 자취하면서 사진을 찍을 설레임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난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는 몰랐다. 사진적인 테크닉은 전혀 없었다.하다 못해 멀티그레이드 인화지에 인화 필터를 써야한다는 것도 2학기가 되어서야 알았다. 점점 서울생활과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졌다.

1994_CANON EO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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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우르과이 라운드 쌀개방 반대시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KBS에서 일하는 병희와 함께 어줍잖은 시대의식으로 광화문으로 향한다. 수백명의 대학생들이 시위중이었다.시위는 격렬해지고 전경대가 투입되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싸늘한 겨울으로 기억하며, 내가 사용중이던 F4s는 갑자기 멈추어 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전경들은 사정없이 학생들을 잡아 들이고 있었고, 파인더를 보고 촬영할 정신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카메라는 멈추어 있었다.병희가 카메라가 얼었다고 얘기하며, 몸에 품으라고 한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카메라가 얼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해 카메라 ‘건전지’가 얼어 버린 것이 었다. 그러나 내가 병희를 봤을 때, 그는 거침없이 날라다니며 촬영하고 있었다. 내 F4s는 병신같이 멈춰 있었다. 그래서 병희에게 물어보았다. ‘야.. 너껀 무슨 카메라냐?’ 다음날 나의 Nikon F4s 카메라 set를 다 들고 충무로로 달려갔다. 난 그날 내 카메라를 다 팔고 Canon EOS-5바디와  EF 28-105렌즈로 교환했다.

EOS-5는 무엇보다도 가벼웠다. F4s는 매탈바디이고 AA베터리가 4개나 들어가기에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 묵직함이 처음 만져보면 좋지만, 하루종일 촬영하면 힘들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플라스틱 바디에 리튬이온 베터리를 채택한 EOS5는 무엇보다도 가벼웠고, 20대의 젊은이를 심심하게 만들지 않는 다양한 기능들도 많이 내장된 것이 특징이었다. 이 카메라를 꽤 오랜시간 사용한 것 같다. 학교도 이것으로 졸업하고, 군대 2년 간의 사진병 시절에도 잘 버텨주었고, 미국에 있을 때도 잘 썼던 것 같다. 음… 그 후에는 누군가에게빌려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으며 서서히 나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1995_ASAHI PENTAX 67

Asahi-Pentax-67

 

신구대학을 졸업과 함께 중형카메라를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뭘 촬영하고 싶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카메라를 사러 충무로 일대와 종로 일대를 돌아다닌 기억는 난다.
당시에는 종로3가에 카메라 상가가 모여 있었다. 이 곳 저곳을 돌아아니다가 ‘선우양행’으로 들어갔고, 우연히 상태좋은 Pentax67 바디를 110만원에 팔고 있었고, 55mm 렌즈와 90mm렌즈를 같이 구입하게 된다.

너무 무거웠다. 67의 미러의 충격은 어마어마 했다. 감히 들고 찍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박아 두었던 Tripod를 다시 꺼냈어야만 했다.

카메라에 대한 감을 잡기도 전에 난 군대를 가야만 했다.
지루했던 2년2개월의 강원도 철원에서의 군생활을 마치자 마자, 그리고 IMF가 터지기 직전에 난 EOS5와 Pentax67을 챙겨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된다.
이 Pentax 67 set는 2006년경 동녕이에게 팔려가게 된다.

2002_HORIZON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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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hof Technorama 612가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파노라마의 프레임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내 수준에서 쓸 수 없는 Linhof는 잊어 버리고, 내가 쓸 수 있는 카메라를 인터넷으로 찾아 나섰다. 그러다 유럽의 어느 사이트에서 Horizon 202가 눈에 들어왔다. 스펙과 결과물을 사이트를 뒤지면서 확인해보고ebay에서 뒤져보니 $300정도에 경매가 가능했다. 고민하다가 구입해버렸다. 미국에서 배송되기를 기다렸다.그러다 카메라는 안오고 우편이 한통 왔다. 세관이었다. Horizon 202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런지 직접 찾으러 오란다.세관원이 꼼꼼히 물어본다. 이게 뭐냐고..이게 카메라냐고… $300이 맞냐고… 그래서 현장에서 ebay 사이트 판매가를 보여주고10만원 정도의 세금을 내고 찾아왔다.35mm 필름의 1.5배에 달하는 58mm x 24mm의 프레임과 회전식 28mm렌즈와 130도 가량의 화각은 상당히 재미있는 느낌을 만들어 주었다.

2002_CANON IXUS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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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경기가 한참중이던 시기에 캐논에서 IXUS V2를 출시한다.그 시기에는 APS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출시했다가, 급격하게 시장성을 넓혀가는 디지털 카메라의 영향력에 묻혀 버리고 있던 시기였다.아마도 초기의 디지털 카메라의 디자인은 APS 시스템의 디자인을 그대로 승계한 것 같다. 작은 디자인에 목에 걸고 있으면 패션의 아이템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개념들이 유행이었다.IXUS V2는 깨끗하면서 모던한 깨끗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당시 200만 화소냐 300만 화소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익서스에 마음이 갔고 구입하고도 꽤 오랫동안 정을 주고 가지고 다녔던 카메라 였다.

2003_TOYO 45AX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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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즈음에 사진계에서는 유형학적 사진이라는 경향이 스믈스믈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Andreas Grusky의 사진이 알음알음 주변을 돌아다녔다. 대형카메라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카메라와 정교한 사진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물망에 오른 카메라는 Linhof,Horseman등 이었다. 처음 대형카메라를 접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카메라였다. 그래서 사이트를 뒤지다가 영등포 어딘가에서 웨딩업을 하시다가 폐업하는 시점에 TOYO Field 카메라를 인터넷에 판매한다고 올린 글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세월의 흔적은 느낄 수 있었지만 깨끗하게 사용하셔서 나쁘진 않았다. 가격도 훌륭했다. 25만원. 135mm렌즈 포함. 바로 구입했고, 스튜디오를 폐업중이던 할아버지는 100개 개량의 홀더가 들어 있는 쇼핑백도 함께 주셨다. 홀더 가격만 100만원이 넘는 값어치 였다. 나의 첫 대형카메라는 이렇게 기분좋게 시작되었다.

2004_K.B CANHAM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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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카메라는 중형카메라를 쓸때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모든 장비와 악세사리까지 모두 다시 사야한다. 가방까지도..
TOYO를 사용할때 어느정도 장비를 갖추고, 카메라를 좀 upgrade를 하려고 찾아본 카메라가  Canham이었다. 정식 수업처는 없었고, 충무로의 반도카메라에서 소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Canham은 이동을 자주하며 촬영해야하며, movement를 많이 해야하는 촬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카메라였다.
우선 카메라를 접으면 Field카메라 만큼 접어진다. 그리고 경량화 시키기 위해 메탈에 구멍을 뚫어서 경량화에 성공하면서 견고함도 유지했다.카메라를 펴면 스텐다드 뷰 카메라 만큼 강력한 movement를 할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카메라인가…

2004_PORAROID SX-70 SONAR ONE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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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촬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어릴적부터 사용해 보고 싶었던 카메라 중에 하나였다. 2001년경 일본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신주쿠의 한 중고 카메라상에서SX-70을 발견하고 가격을 물어보니 30만원이 넘었다. 그러곤 마음을 접었다. IT강국이라고 자랑질하며, 인터넷을 전국적으로 미친듯이 깔아대고, 사람들은 점점 디지털의 세상으로 넘어가던 2004년경,아날로그 사진의 끝이 었던 폴라로이드 필름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카메라 가격이 10만원선으로 떨어진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만족스러웠다. 필름을 얼마나 사서 찍었는지 모른다. 아마 100만원은 족히 썼을 것이다. 미친듯이 찍었다. 그러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촬영을 멈추었다. 2007년경 폴라로이드가 문을 닫으면서 필름의 수급은 더욱 어려워졌고,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필름을 만들고 있지만 가격이 10장 1팩에 3만원대이다. 난 찍을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2005_ROLLEIFLEX 3.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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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카메라는 나에게 버거운 카메라 였다. 마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처럼 불편하였다. 사용하기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담는 것이 문제였다. 직관적(straightforward)으로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 더이상 공간에 대한 집착으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홍대대학원에서 이희상 선생님을 만났다. 그 만남이 나의 시각을, 의식을 확장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Rolleiflex에 대해 알아보고 구입하기를 세차례. 실수에 실수를 거쳐 Rolleiflex 3.5F 75mm 5세대를 구입하였다. 천천히 필터와 악세사리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촬영을 했다. 낮이건 밤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촬영을 했다. 마치 그런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카메라처럼 내 시각에, 내 몸에 달라 붙어 있었다. 나의 사진의 대부분을 만들어준 녀석이다. 지금은 조금 주춤하고 있지만, 곧 다시 둘러매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05_L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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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놈하나 안들고 있으면 간첩이라고 했다. 샌스쟁이들은 마치 악세사리를 구입하듯 경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이놈이 내손에 우연히 굴러들어온다. 탄탄한 외모와 앙증맞은 느낌의 이녀석은 보기보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만만히 볼 놈은 아니었다. 초점방식이 목측식 방식이었으므로, 노출이야 뒷전이라고 쳐도 포커스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어려운데, 일반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찍는 거지?
내손에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많이 찍어 보지도 못하고, 비오는 어느날 팔려나갔다. 하여간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이놈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것 같다. 지금도 LOMOGRAPHY에서 판매중이고, 여전히 디지털사진의 밎밎한 느낌을 싫어하는 전세계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 같다.

2006_LEICA MINIL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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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플렉스의 6×6의 정방형 프레임이 언젠가 매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롤라이 말고 다른 무엇인가가 내 손에 들려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이리 저리 알아보다가 PS 카메라 중에 찾아 보다가 미니룩스를 보게 된다. 로모는 포커스에 어렵고, 원고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미니룩스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왔다. 생각보단 크기가 크다. 라이카의 빨간 딱지를 제외하고는 별로 이쁜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40mm의 렌즈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칼라필름을 사서 촬영도 해보고 흑백도 사용해 보고,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되었다. 무엇보다 파인더가 지랄 같다. 도무지 들여다 봐도 뭐가 보이질 않는다. 카메라도 크고,파인더도 지랄같고, 이쁘지도 않고, 그럼… 결론은 파는 것이다.

2006_LEICA R4 with 35mm SUMMIC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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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라이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 나는? 나 역시 매한가지다. 하지만 어릴때는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뭔가 라이카마저 손을 대면 더 이상 카메라를 가지고 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미니룩스를 쓰고는 서서히 라이카에 빠져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M시르즈는 여전히 피한다. 그럼 남은 것은 R시리즈.

Leica R 시리즈는 ‘서자庶子’ 취급을 받는다. SLR의 라이카는 사람들은 있는줄도 모를 정도로 찬밥 신세다.
그래서 싸다. 그리고 상당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난 개인적으론 M보다 R시리즈를 더 좋아한다. 50mm 렌즈보다 35mm렌즈를 더 좋아한던 시절이었어서 50mm렌즈를 팔고 35mm를 구입했다.꽤나 심취하여 촬영하러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Nikon의 FM2를 사느니 라이카의 R시리즈를 사라고 권한다.

2006_BESSA R2A with Color Skopar 3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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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란더 클럽이란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서 보이그란더에 급격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롤라이플렉스와 라이카R4를 함께 들고 다니기에는 꽤나 무거웠다. 35mm 카메라는 서브용이라는 생각이 강했으므로, 라이카R4는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보이그랜더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RF방식이었다. 바로 작업에 착수하여 그 당시 신형이던 R2a를 구입.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에 적응 훈련에 돌입한다. 처음 몇달동안은 쉽지 않았다. 노출이나, 포커스나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참으며 촬영 할 수 있었던 것은 렌즈의 느낌이 좋았다. 무거운 Black의 느낌은 좀처럼 잡생각을 들게 하지 않았다.

2008_FUJI GW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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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란더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생각 없이 미친듯이 촬영하는 것은 좋았지만, 뭔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필름의 크기가 작다. 촬영은 하지만 전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확보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촬영 양이 급속히 줄어 들었다. 그럼 중형카메라 중에 넓은 화각을 유지하면서 쓸 수 있는 카메라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희상샘이 쓰고 있는 69포멧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만하고 있다가 종로5가를 촬영다니던 중, 창용이가 말한 카메라가게에 후지69가 있다는 말을 듯고 찾아 나선다. 정말 구석진 시장통안에 조그만 카메라 샾에 후지69가 거짓말 처럼 랩에 쌓여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을 물어봤다. 바로 은행으로 가서 돈을 찾아서 구입해 버렸다. 롤라이의 정방형 포멧과 후지69의 2:3포멧은 가장 적절한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레인지파인더 방식이라 69포멧이지만, 부피가 작았으며, 플라스틱바디라서 가벼웠다. 언젠가부터는 롤라이플렉스도 안가지고 다닐정도로 후지69에 푹빠지게 된다. 하지만 단점하나. 8컷 촬영이다. 필름값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2008년 당시만 해도 120필름 한롤에 4000원정도 하던 때였기에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08_CANON 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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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이미지라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뭐든 부담없이 셔터를 누르고 싶었다. 필름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자료 수집용이라고 생각하며 디지털 카메라에 눈을 돌렸다. 2002년의 G2부터 봐온터라 G9은 다른 PS계열의 카메라보다 각지고 반듯하고 힘이 있어 보였다. DSLR은 부피가 커서, 단지 자료용일 뿐이란 생각에 G9을 구입한다. 훌륭하고 만족 스러웠다. 파우치에 넣고 아저씨처럼 허리에 차고 다니며 신나게 셔터를 눌러 댄다.

2009_RICHO GX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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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용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와 후지69로 거의 마무리 지으면서 나의 관심사는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간다. 캐논 G9은 만족스럽기는 했지만딱히 정이 가지 않는다. 평소 리코를 써보고 싶었기에 슬슬 리코에 대해 알아본다. 리코는 필름바디인 GR시리즈의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한다. 그러나 리코 GRD2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단렌즈다. PS카메라에서 조차 단렌즈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바디가 GX200이다. GR바디의 디자인에 Zoom을 장착했다. 그리고 리코는 리코만의 독특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 뭔가 필름스럽기도하고, 채도가 28%쯤 빠진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 그리고 뭔가 잠시 스쳐간 카메라였던 것 같다.

2009_OLYMPUS 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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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스타일의 카메라를 쓰다보면 뭔가에 홀린듯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든다. 카메라가 작고 편하니 막사 촬영나가면 어깨에 매고 있는 후지69보다 디카에 손이 먼저 간다. 그런 행위가 반복되면서 뭔가 CCD가 좀더 컷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던 중 때마침 올림푸스에서 E-P1을 출시한다. APS크기의 CCD를 장착한 이놈은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다. 우선 처음 출시되는 미러리스형이다. 진동이 없고 크기가 작아 진다. 그러면서도 CCD의 크기는 보급형 DSLR급이다. 렌즈도 교환된다. 매력적이다. 지금은 full frame의 미러리스 카메라가 나오고 있는 마당이지만 말이다. 디자인은 올림푸스의 최고의 히트작인 half 카메라인 올림푸스 PEN 시리즈를 수십년 만에 복각 시킨다. 사진의 매니아라면 누가 관심을 안가지겠는가.. 출시 당일에 예약하고 샀다. 내 인생에 몇 안되는 박스를 뜯고 신제품을 산것 같다. 그러나 곧 한계를 들어낸다. 화질이 생각만큰 좋지 않다. 그리고 사용하는 내부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많이 떨어진다. 조작이 불편하다. 그것은 내가 캐논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러하리라.

2010_CANON POWER SHOT S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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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디지털에서는 DSLR이 땡기지 않는다. 리코의 Gx200에서 조금 실망하고, 생각해보니.. 역시 카메라는 캐논이란 결론이.그래서 다시 캐논을 뒤적거린다. 그러다 반듯하고 깨끗한 s95가 눈에 들어온다. 동급에서는 제일 좋은 것 같다. 한참 손에 붙어 다니다가 언젠가 친형에게 빼앗겨 버린다. 당시에는 핸드폰의 사진의 질이 좋아지면서 내심 이제 핸드폰으로 찍으면 되지… 라고 방심하고 형에게 넘어 갔다. 당시 형은 DSLR을 사기전에 잠시만 써보자고 말했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똑딱이 카메라의 끝인 것 같다. 미러리스네 나발이네 다 필요 없는 것 같다. 컴팩트카메라는 컴팩트해야한다. 그게 답이다.

2010_FUJI GA645 PROFESS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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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의 가격이 계속 오른다. 미친 것이다. 120필름을 주로 쓸때가 3000원이었다. 그런 필름이 디지털에 밀리면서 5000원이 넘는다. 사진 찍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645판형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이다. 69판형보다 2배를 찍을 수 있는 16장 촬영이 가능하다. 후지645를 뒤진다. 부산 일광카메라에 상태좋은 Professional버전으로 착한 가격에 판다.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구입한다. 롤라이플렉스는 촬영나갔다가 스트렙이 끊어지면서 떨어지게 되고 하필이면 렌즈부분으로 떨어지면서 축이 틀어진다. 수리가 들어가야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후지69와 후지645를 주로 들고 다니면서 촬영한다. 때마친 이때가 일민미술관 시각총서 작업하던 시기라서 신나게 들고 전국곳곳을 누비며 다닌다.

2010_PHASEONE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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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아카데미에서 춘길형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우연히 형의 디지털백을 촬영해보고 원본을 받아본다.

충!격!적! 이었다.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카메라가 아니었기에 잊고 있다가 우연히 경제적 능력이 잠시 생기면서 다시 Phase One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겁도 없이 사버린다.

2010_HASSELBLAD SW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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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를 구입하고 snap을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휴대하기 편한 카메라를 알아보다가 SWC를 구입하게 된다. 38미리의 디스타곤 렌즈는 역시나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작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쉬웠다. 그러나 단점은 목측식이라는 것. 다시 초점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로모를 사용할 때는 이건 미친것이야..라면 내다 버렸는데 SWC는 그러지도 못한다. 그래서 주자장에 마스킹 테이프를 1미터 간격으로 6미터까지 붙이고 틈틈히 주차장으로 나가서 거리감을 익힌다. 그런 연습이 먹힌다. 대략 피사체만 봐도 몇미터정도인지 감이 잡힌다. 촬영하기가 더욱 수월해 진다. 다른 단점이라면 셔터소리가 좀 크고, 약간의 진동이 생긴다. 하지만 워낙 렌즈가 광각이고 심도가 깊어서 상관 없는 줄 알았다.

2010_HASSELBLAD 503CXI with 80mm and 6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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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를 극복하지 못하고 본연의 핫셀로 돌아온다. 우선 렌즈의 선택이 좀더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부피가 여전히 크고 무겁다.무엇보다도 SWC를 벗어난 이유는, P45+가 원인이다. CCD가 커지면서 들고 촬영한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깨닭는다. 카메라만 중형이지 P45+는 대형카메라 촬영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조건 삼각대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서 디지털백이 가진 해상도를 보여준다.

2010_CANON 5D MARK2 with Carl Zeiss 50mm ZE and 4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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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s95를 형에게 빼앗기면서 나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필름 작업은 잠시 쉬기로 마음을 먹는다. 우선 필름의 가격이 비싸지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지금 디지털작업을 안하면 나의 40대가 보이질 않는 것 같았다. 무작정 디지털로 사진 찍는 것을 멀리 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데 나중이면 너무 늦어 버릴 것 같았다. 지금도 사진하는 친구들 10명이 모이면 9명이 대형카메라에 필름작업이다. 디지털사진의 느낌을 싫어하지만, 내심 본인도 컴퓨터라는 친구랑 친해질 시간을 놓친것이다. 지금은 애매한 시기이다. 디지털도 필름도 공존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촬영한지 2년정도 되지만, 나역시 아직 적응하기 쉽지 않고 할 수록 어려운 것 같고, 틈만나면 필름을 돌아가고 싶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져본다. 그런 마음을 굳건히 먹기 위해서 얼마전에 허접한 35mm F2렌즈와 50mm 1.4를 둘다 팔아버리고 Carl Zeiss 50mm를 구입했다. AF가 주는 밋밋한 촬영과 긴장감 하나 없는 사진찍기가 이놈을 통해서 점점 재미 있어 지고 있다.